요한복음 13

요약예수님께서이 세상을 떠날때가 된 것을 아심
제자들의 말을 씻겨주시고 자신을 따라 행하기를 가르침 .
제자들 중 누군가 예수님을 배반할 것이라고 예고 .
예수님께서 자신이 제자들이 올 수 없는 곳으로 갈 것임을 이야기하시면서 새 계명을 주심 .
베드로가 어디에 목숨도 바치겠다는 베드로의 고백,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할 것이고 예고.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을 떠날때가 된 것을 아시고 제자들의 말을 씻겨주십니다 . 제자들에게 발을 씻겨주신 것의 의미를 설명하시고 제자들에게 자신을 따라 행하기를 가르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대로 너희도 행하게 하기 위해 내가 본을 보여 주었다(15절)’   제자들 중 누군가 예수님을 배반할 것이라고 예고하시고 그게 누구냐는 제자의 질문에 이 빵 한조각을 주는 사람이 그 사람이라고 하고 그 빵을 유다에게 주셨습니다 . 하지만 제자들은 유다가 배신할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고 유다는 빵조각을 받은 후 밖으로 나갔습니다. 21절에서는 너희중 하나가 예수님을 배반할 것이라는 말씀을 마시면서 괴로워하시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곧 자신이 제자들이 올 수 없는 곳으로 갈 것임을 이야기하시면서 새 계명을 주시는데 이는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 베드로가 어디에 가시냐고  목숨도 바치겠다고 고백하는데 이에 예수님은 베드로가 닭이 울기전에 자신을 3번 부인할 것이고 예고하십니다.

묵상질문
13장에서는 제자들에게 구체적이고 명확한 지시사항이 주어집니다. 전반주에 하나, 후반부에 또 하나. 그리고 그 두개의 지시 사항 가운데 배신을 예고하시는 일화가 들어있습니다. 이런 13장의 구조가 전하는 메세지는 무엇일까요?

네 , 13장에서 은유없이 직접적으로 지침하시는 것이 두가지 나옵니다. 섬기는 것과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14절에서 ‘서로 남의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  ’그리고 34절에서 ‘서로 사랑하라.’ 그 구절을 전체로 보면 똑같은 구조로 지침을 주시고  있습니다 .
* 형식 : 예수님이 하신대로 / 너희도 이렇게.

01 주이며 선생님인 내가 너희 발을 씻겨주었으니  / 너희도 서로 남의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 14절
02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4절.

이렇게 두개의 지침을 주시면서 그 사이에 배신을 예고하는 일화가 들어있습니다 . 그런데 배신하는 유다를 표현하시는 것이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다가 배신할 것이다.’ 가 아니라
2절에서는 ‘마귀는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를 배반할 생각을 넣었습니다’
27절에서는 ‘유다가 빵을 받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습니다.’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유다가 배신하는 사건을 유다가 아닌 마귀가 주체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누가복음에도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22:3)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사탄이 들어간 유다는 밤중에 밖으로 나가고 그는 사랑의 새 계명을 듣지 못했습니다.  왜 이렇게 사탄이 들어갔다고 표현할까, 더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인간이 갖는 마음 , 말과 행동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주신것과 그렇지 않은 것. 내 생명이 주심께서 나왔고 내 삶을 주관하시는 분이 주님이시라면 내 마음에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것은 어디서 나오겠습니까. 이런 맥락에서 떠오르는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디모데 후서 1:7)
다시 유다의 상황으로 돌아와 보면 유다에게는 하나님이 주신것이 아닌 사탄이 준 마음이 유다를 작동시키고 있었겠지요 그래서 사랑도 없었고 사랑의 계명을 받지도 못한것이겠지요 . 그런데 어떻게 하다가 사탄이 유다의 마음에 들어갔을 까요?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사탄의 들어간다’ 의 치료 혹은 방지책이 ‘서로 사랑한다’ 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번 묵사을 마무리짓게 됩니다.

역설적으로도 배신을 예고하시고 바로 이어 전하시는 계명은 사랑이었습니다 . 끝까지 베푸는 사랑을 보여주시는 주님. 13장의 핵심 메세지는 사랑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13장 1절의 말씀이 왜 이 장의 첫 구절에 박혀있는지가 와닿습니다. 1절에서 “예수께서는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1절과 마지막 절의 대조되는 구조가 보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절38절에서는 베드로에게 닮이 울기전에 네가 나를 3번 부인할 것이다 라고 예언하십니다. 부인한다는 것은 끝까지 사랑하는 것의 반대이며 이는 예수님은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나 우리 인간들은 우리의 안위를 위해, 상황에 따라서는 주님을 부인하는 끝까지 사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런 우리의 모습이 예수님을 몹시도 슬프게 하겠죠. 우리를 끝까지 사랑해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도 적당히하는 사랑, 적당한 믿음이 아니라 주님을 끝까지 사랑하는 모습으로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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