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9

19장
요약
본 19장에서 예수님이 돌아가시는 사건이 등장합니다. 이 사건을 중심으로 19장은 크게 두부분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시기로 결정나기 전과 결정 후. 십자가에 못박히시기로 판결나기 전에는 빌라도와 유대인의 갈등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부분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상황 설명은 심히 가슴을 아프게 하고 상화을 연상하기 마음을 힘들게 합니다.

예수님을 두고 빌라도와 유대인의 갈등
1-3빌라도가 예수님을 채찍질함.
4-7빌라도가 예수님을 데리고 나오고 유대사람들이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고, 빌라도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다고 밝힘.
8-15 빌라도가 예수님께 다시 질문. 십자가를 지시기전 마지막 대화.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애쓰는 빌라도 와 그 옆에서 예수님을 놓아주면 로마의 충신이 아니라고 간언하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기를 주장하는 유대인.
16 결국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결정.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예수님
17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로 가심
18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음.
19-24명패
25-27 어머니를 챙기는 예수님. 제자에게 “네 어머니다” 라고 말씀하시고 그 제자가 어머니를 모심.
28 신포도주를 받으시고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고 숨을 거두심.
29-37성경말씀대로 이루심.
38-42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내려달라고 간청. 빌라도가 허락하고 요셉과 니고데모가 유대 사람들의 장례관례를 따라 향품과 함께 삼베에 싸서 시신을 무덤에 모심.

묵상 & 묵상질문
어머니를 사랑한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인간적인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어 가시는 고통속의 상황에서 어머님을 챙기는 모습. 제자에게 “보아라. 네 어머니다.” 라고 말하신 예수님. 어머니를 사랑한 예수님을 보면서 예수님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아프게 감동이 되었습니다.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나와 같은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을 곧잘 하게 되지만 예수님은 우리 인간의 모습을 갖고 오신 분임을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그 가시관과 못이 얼마나 아팠을까. 피흘리심이 고통스러웠을 터인데 그 가운데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으시고 흥분하지 않으시고 위협앞에서도 진리를 말하시며 사랑과 관심을 놓지 않으시는 모습. 그리고 내가 그러하듯이 그의 어머니를 사랑하시는 인간적인 모습. 예수님이 가시는 모습에서 다시 한번 주님이 우리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우리 인간과 다르게 사시고 간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그런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이 내 호흡의 목표가 됨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나의 하찮은 감흥과 고통을 이기는 능력과 그 큰 사랑이 없음을 백합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의 사랑이 내 호흡을 가장 보람되고 기쁘게 할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사랑으로 우리 엄마를 우리 이웃을 사랑하기 원합니다.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했지만 십자가 처형 판결을 내린 빌라도 vs예수님을 죽이려는 유대인들 . 누가 더 잘못했나?
이번 묵상을 통해서 이전까지 생각해 보지 못한 시각을 발견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의 내용들을 살펴볼 수록 이는 모두 예수님을 두고 빌라도와 유대인의 갈등으로 귀결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놓아주려는 빌라도와 그에 반대하며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려는 유대인들.
빌라도를 조사해볼 수록 그는 여러가지로 예수님을 처형하는 책임을 회피하고 싶었던것 같습니다. 마가복음 17:19절의 내용을 살피면 그의 아내가 강하게 빌라도를 말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하더라 ( 17:19)

여기서 그럼 예수님의 처형에 대한 책임에 대해 빌라도와 유대인의 책임이냐 라는 질문을 해보게 됩니다. 빌라도와 예수님의 마지막 대화에서 예수님께서,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 요19:11”

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나를 네게 넘겨준 자의 죄가 더 크다” 고 언급하시는 것은 빌라도에게도 죄가 있지만 유대의 주동자들에게 더 큰 죄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이 빌라도와 니고데모를 보면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믿음생활과 그 영향력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빌라도가 예수님께 “내가 너를 놓아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 했었습니다. 몇 시간 뒤, 그는 이 중요한 순간에서 십자가에 못 박은 권한을 택하며 중대한 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빌라도는 그는 자신의 지위과 권력으로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용기가 없었고 그냥 군중의 외침에 따른 결정이 내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니고데모는 유대 지도자들의 눈치를 보며 자신의 믿음을 단호히 내세우지 못하고 조용히 숨어서 예수님을 찾아갔고 또 예수님의 장례를 치르니다. 이렇게 높은 위치과 권한을 갖은 사람들을 보면서높은 위치에서 믿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특별히 높은 위치의 어려움,  높은 위치이기 때문에 자신의 말과 행동의 영향력이 크다는 점과 자신을 정죄하는 세상의 눈이 많다는 두려움. 그것들로 하여금 한 개인의 자신을 믿음을 견고히 지키고 믿음을 따라 순종하는 것이 더 어려워 진다는 점들이 보입니다. 또 반대로 그 위치에서 힘든 가운데에서도 올바른 결정을 하였을 때 많은 사람에게 선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물론이고요. 하지만 그 권한들 앞에서 용기있는 결단을 내리고 소신을 지키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늘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 그 상황을 바르게 볼 수 있고, 또 그 힘듬을 이겨낼 큰 위안이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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