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9

19장
요약
본 19장에서 예수님이 돌아가시는 사건이 등장합니다. 이 사건을 중심으로 19장은 크게 두부분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시기로 결정나기 전과 결정 후. 십자가에 못박히시기로 판결나기 전에는 빌라도와 유대인의 갈등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부분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상황 설명은 심히 가슴을 아프게 하고 상화을 연상하기 마음을 힘들게 합니다.

예수님을 두고 빌라도와 유대인의 갈등
1-3빌라도가 예수님을 채찍질함.
4-7빌라도가 예수님을 데리고 나오고 유대사람들이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고, 빌라도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다고 밝힘.
8-15 빌라도가 예수님께 다시 질문. 십자가를 지시기전 마지막 대화.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애쓰는 빌라도 와 그 옆에서 예수님을 놓아주면 로마의 충신이 아니라고 간언하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기를 주장하는 유대인.
16 결국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결정.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예수님
17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로 가심
18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음.
19-24명패
25-27 어머니를 챙기는 예수님. 제자에게 “네 어머니다” 라고 말씀하시고 그 제자가 어머니를 모심.
28 신포도주를 받으시고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고 숨을 거두심.
29-37성경말씀대로 이루심.
38-42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내려달라고 간청. 빌라도가 허락하고 요셉과 니고데모가 유대 사람들의 장례관례를 따라 향품과 함께 삼베에 싸서 시신을 무덤에 모심.

묵상 & 묵상질문
어머니를 사랑한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인간적인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어 가시는 고통속의 상황에서 어머님을 챙기는 모습. 제자에게 “보아라. 네 어머니다.” 라고 말하신 예수님. 어머니를 사랑한 예수님을 보면서 예수님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아프게 감동이 되었습니다.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나와 같은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을 곧잘 하게 되지만 예수님은 우리 인간의 모습을 갖고 오신 분임을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그 가시관과 못이 얼마나 아팠을까. 피흘리심이 고통스러웠을 터인데 그 가운데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으시고 흥분하지 않으시고 위협앞에서도 진리를 말하시며 사랑과 관심을 놓지 않으시는 모습. 그리고 내가 그러하듯이 그의 어머니를 사랑하시는 인간적인 모습. 예수님이 가시는 모습에서 다시 한번 주님이 우리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우리 인간과 다르게 사시고 간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그런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이 내 호흡의 목표가 됨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나의 하찮은 감흥과 고통을 이기는 능력과 그 큰 사랑이 없음을 백합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의 사랑이 내 호흡을 가장 보람되고 기쁘게 할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사랑으로 우리 엄마를 우리 이웃을 사랑하기 원합니다.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했지만 십자가 처형 판결을 내린 빌라도 vs예수님을 죽이려는 유대인들 . 누가 더 잘못했나?
이번 묵상을 통해서 이전까지 생각해 보지 못한 시각을 발견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의 내용들을 살펴볼 수록 이는 모두 예수님을 두고 빌라도와 유대인의 갈등으로 귀결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놓아주려는 빌라도와 그에 반대하며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려는 유대인들.
빌라도를 조사해볼 수록 그는 여러가지로 예수님을 처형하는 책임을 회피하고 싶었던것 같습니다. 마가복음 17:19절의 내용을 살피면 그의 아내가 강하게 빌라도를 말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하더라 ( 17:19)

여기서 그럼 예수님의 처형에 대한 책임에 대해 빌라도와 유대인의 책임이냐 라는 질문을 해보게 됩니다. 빌라도와 예수님의 마지막 대화에서 예수님께서,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 요19:11”

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나를 네게 넘겨준 자의 죄가 더 크다” 고 언급하시는 것은 빌라도에게도 죄가 있지만 유대의 주동자들에게 더 큰 죄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이 빌라도와 니고데모를 보면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믿음생활과 그 영향력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빌라도가 예수님께 “내가 너를 놓아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 했었습니다. 몇 시간 뒤, 그는 이 중요한 순간에서 십자가에 못 박은 권한을 택하며 중대한 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빌라도는 그는 자신의 지위과 권력으로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용기가 없었고 그냥 군중의 외침에 따른 결정이 내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니고데모는 유대 지도자들의 눈치를 보며 자신의 믿음을 단호히 내세우지 못하고 조용히 숨어서 예수님을 찾아갔고 또 예수님의 장례를 치르니다. 이렇게 높은 위치과 권한을 갖은 사람들을 보면서높은 위치에서 믿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특별히 높은 위치의 어려움,  높은 위치이기 때문에 자신의 말과 행동의 영향력이 크다는 점과 자신을 정죄하는 세상의 눈이 많다는 두려움. 그것들로 하여금 한 개인의 자신을 믿음을 견고히 지키고 믿음을 따라 순종하는 것이 더 어려워 진다는 점들이 보입니다. 또 반대로 그 위치에서 힘든 가운데에서도 올바른 결정을 하였을 때 많은 사람에게 선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물론이고요. 하지만 그 권한들 앞에서 용기있는 결단을 내리고 소신을 지키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늘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 그 상황을 바르게 볼 수 있고, 또 그 힘듬을 이겨낼 큰 위안이 되는 것 같습니다.

Advertisements

요한복음 18

요한복음18장

요약

1-2 예수님과 제자들이 기드론 골짜기 건너편 언덕으로 가심.
3-9유다가 경비병들 무기와 함께 출두, 경비병들과 예수님 대화 – 예수님께서 본인이 그들이 찾는 나사렛 사람 예수라고 대답하고 나머지 제자들은 보내주라고 하심
10-11 베드라가 종의 귀를 배고 이를 진정지시키는 예수님
12-14경비병들이 예수님을 체포하여 대제사장 안나스에게 끌고 감
15-18베드로의 첫번째 부인– 두 제자 예수님을 따라가서 대제사장 집으로 따라 갔는데 그중 한명인 베드로가 제장중 한사람이냐는 질문에 아니라고 대답함.
19-24 대제사장과 예수님의 대화 – 예수님은 본인이 숨어서 행동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을 밝히고 심문받는 이유를 물음. 경비병이 예수님의 태도를 나무라며 예수님의 얼굴을 치고 이에 예수님이 자신을 치는 자신의 잘못한 증거를 되물으니 안나스가 예수님을 가야바에게로 보냄.
25-27 예수님의 제자였다는 사실을 두번 더 부인. 이렇게 세번 부인 후 닭이 울고 베드로가 울음.
28-32 유대사람들이 예수님을 로마 총독의 관저로 끌고 감. 빌라도가 유대인들의 법대로 하라며 돌려 보내려고 함.
33-38 빌라도와 예수님의 대화. 대화후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다고 함.
39-40 빌라도가 유월절에 예수님을 놓아주자고 하니 사람들의 반대. 

묵상질문
예수님의 체포를 본 베드로의 2가지 반응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은 무엇일까요?

18장에서 예수님이 체포되는 모습을 보고 베드로는 두가지의 사건을 보여줍니다. 첫째는 칼을 끄내어 종의 귀를 베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둘째로는 예수님을 부인하며 자신은 제자가 아니라고 거짓말 하며 순간을 모면합니다. 예수님의 예언대로 말이예요. 그런데 이런 베드로가 보여주는 두가지 모습은 그냥 베드로라는 한 개인이 아니라 우리 많은 인간들의 모습으로 보여집니다. 우리가 오늘날 살면서 위급한 일이 생겼을 때 하는 행동들을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흥분하여 괜한 주변 사람들에게 화를 낸 것이고
둘째는 자신의 책임을 최소화하기 위해 거짓말 등의 가능한 일시적 수습을 한 것이었습니다.

내 일상을 살아가면서 남의 귀를 베어버리지는 않지만 내 화에, 흥분하여 그저 지나가던 행인에게 불쾌를 전하고, 죄업는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는 모습을 회개합니다. 이 사회의 폭력적인 부분들을 보면 나는 그러지 않았다고 모르는 척하는 나의 거짓말을 회개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닮아가기를 더욱 기도합니다. 빌라도와의 대화에서 아래와 같이 말씀하신 예수님의 대답이 내가 왜 이 땅에서 흥분할 이유가 없는지를 한번 더 설명해주었습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라면 내 종들이 싸워 유대 사람들이나를 체포하지 못하도록 막았을 것이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지금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다. (요18:36)”

본18장 묵상 하는 날 모스턴 마라톤 폭탄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 보도를 보면서 제 멘토이신 선주언니가 많이 아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세상에 흥분이 많고, 폭력이 증가하고 또 그 폭력에 대처하는 우리의 흥분된 모습이 예수님을 더 닮아가기를 더욱 기도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탐구학습
예수님은 죄가 없다고 선고하며 예수님을 풀어주려는 빌라도를 보았습니다. 사도신경에도 나오는 빌라도(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suffered under Pontius Pilates)는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 좀 더 조사해 보았습니다.

본디오 빌라도는 유대지역의 로마 5대 총독으로 부임해 와있었습니다. 빌라도에 대해 찾아보다가 황제에게 보내는 빌라도의 보고서*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그 보고서는 예수님이 부활하시고(시체가 없어지고) 나서 빌라도가 로마 황제에게 자신이 유대지역으로 부임해오는 초기부터 예수님에 대한 소란과 사건들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자신이 예수님을 처형하도록 결정내리게 된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8,19절에서 빌라도가 내린 결정들과 상황들이 빌라도의 관점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빌라도는 상황을 설명하며 마지막에 “나는 진실로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라고 결론을 지었습니다.

빌라도가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는지 예수의 비극의 순간을 잊을 수 없었으며 그것에 후애 자살로 이어졌다고 하는 설도 있고, 그가 그리스도인이 되어 순교를 당하였다는 설도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에디오피아교회에서는 빌라도와 예수님을 죽이지 말라고 했던 그의 아내가 추앙받고 있다고 한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an5462951&logNo=108470121&parentCategoryNo=24&viewDate=&currentPage=1&listtype=0  (참조 : 황제에게 보내는 빌라도의 보고서, 네이버 블로그)

 

요한복음16장

 

요약

1  말씀하시는 목적.
2-4  제자들이 겪게될 힘든 상황을 예고.  힘든 상황이 오는 이유와 예수님이 지금 설명하시는 이유. 떠나심에 대한 설명.
5 예수님의 떠나심이 유익한 이유 설명, 성령님에 대한 설명.
20-22다가올 슬픔과 곧 오게 될 기쁨.
23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라고 당부하심.
28 아버지께로 돌아감을 밝히심.
29-30  제자들의 믿는다는 고백.
31 예수님을 떠날 것을 예고.
33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목적을 다시 설명하며 승리를 선포

십자가를 지시기 하루전에 예수님이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는 말씀입니다. 때가 되었고 또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벌어질 일들과 그를 통해서 제자들이 겪게될 힘든 것과 또 감정들을 예고하시면서 제자들의 앞날을 예비하시고 준비시켜 주십니다. 첫 절과 끝 절이 다시 수미상응하는 구조를 보게 됩니다. 1절에서 예수님이 전하시는 말씀의 목적이 ‘너희가 믿음에서 넘어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라고 직접적으로 밝히시고 또 마지막 33절에서 다시한번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고’ 라며 예수의 의도를 전하십니다. 우리를 챙기시고 아끼시는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넘어지지 않고 평안을 누릴 수 있도록 “내가 세상을 이미 이겼다.” 고 알려주시며 힘을 실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떠나시기전 우리에게 ‘구하라’고 당부하시는 모습이 가슴이 와닿습니다. 23 절에서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꼐 구하면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주실 것이라고 알려주시고 24절에서 다시 한번 구하라, 그러면 받을 것이니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라고 당부하십니다. 14장에서 구하라고 하신 말씀을 되새깁니다.

14:13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14:14 너희는 내 일므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러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구하는 것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십자가를 지시고 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 몇번이나 강조하신 이 말씀을 보는데 영화의 감동적인 장면들을 떠올랐습니다. 영화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이 사랑어린 눈물 한방울 혹은 특정 단어일 때가 있잖아요. 눈물이나 특정 단어는 모든 것을 이루는 열쇠를 나타내는 표상으로 사용된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의 결정적인 순간에, 중요한 순간에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을 통해서임을 고백합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열어주는 열쇠요 진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구하는 것임을 고백합니다.

 

묵상질문

이 가운데 예수님떠나시고 오시게 될 성령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십니다. 성령님에 대해 좀더 생각해 봅시다.

앞서 14장에서 보혜사 성령님에 대한 약속을 하시고 오실 성령님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16장에서 그 성령님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주십니다. 보혜사란 “곁에서 돕기 위해 부름 받은 자”란 뜻이라고 한다. KJV는 comforter로 NIV, RSV는 counselor, 다른 성경들은 helper로 쓰고있고 현대인의성경에서는 “보호자”로 번역되어있습니다.  14장과 16장의 몇 구절을 다시 되새겨 봅니다.

14:16 ~너희에게 다른 보혜사를 보내셔서 너희와 영원히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며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16:14-15 그 분은 내 것을 받아서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므로 나를 영광되게 하실 것이다.아버지께 속한 모든 것은 다 내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성령님께서 내 것을 받아서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14장과 16장을 이어서 삼위일체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셨고 예수님이 떠나실 때에 다른 보혜사를 보내셔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있도록 해주시기로 하셨고 그 보혜사가 곧 성령님이라는 것. 그 성령님은 예수님 것을 받아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이고 예수님 것은 하나님 것이니 ‘성령님=예수님=하나님 아버지’ 이렇게 되는 것이구나. 삼위일체에 대해서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성령책의 통해, 성경 문구를 읽어서 연결시켜본적이 없었는데 성경을 확인하는 기쁨이 심히 큼을 고백합니다. 감사합니다.

요한복음 13

요약예수님께서이 세상을 떠날때가 된 것을 아심
제자들의 말을 씻겨주시고 자신을 따라 행하기를 가르침 .
제자들 중 누군가 예수님을 배반할 것이라고 예고 .
예수님께서 자신이 제자들이 올 수 없는 곳으로 갈 것임을 이야기하시면서 새 계명을 주심 .
베드로가 어디에 목숨도 바치겠다는 베드로의 고백,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할 것이고 예고.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을 떠날때가 된 것을 아시고 제자들의 말을 씻겨주십니다 . 제자들에게 발을 씻겨주신 것의 의미를 설명하시고 제자들에게 자신을 따라 행하기를 가르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대로 너희도 행하게 하기 위해 내가 본을 보여 주었다(15절)’   제자들 중 누군가 예수님을 배반할 것이라고 예고하시고 그게 누구냐는 제자의 질문에 이 빵 한조각을 주는 사람이 그 사람이라고 하고 그 빵을 유다에게 주셨습니다 . 하지만 제자들은 유다가 배신할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고 유다는 빵조각을 받은 후 밖으로 나갔습니다. 21절에서는 너희중 하나가 예수님을 배반할 것이라는 말씀을 마시면서 괴로워하시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곧 자신이 제자들이 올 수 없는 곳으로 갈 것임을 이야기하시면서 새 계명을 주시는데 이는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 베드로가 어디에 가시냐고  목숨도 바치겠다고 고백하는데 이에 예수님은 베드로가 닭이 울기전에 자신을 3번 부인할 것이고 예고하십니다.

묵상질문
13장에서는 제자들에게 구체적이고 명확한 지시사항이 주어집니다. 전반주에 하나, 후반부에 또 하나. 그리고 그 두개의 지시 사항 가운데 배신을 예고하시는 일화가 들어있습니다. 이런 13장의 구조가 전하는 메세지는 무엇일까요?

네 , 13장에서 은유없이 직접적으로 지침하시는 것이 두가지 나옵니다. 섬기는 것과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14절에서 ‘서로 남의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  ’그리고 34절에서 ‘서로 사랑하라.’ 그 구절을 전체로 보면 똑같은 구조로 지침을 주시고  있습니다 .
* 형식 : 예수님이 하신대로 / 너희도 이렇게.

01 주이며 선생님인 내가 너희 발을 씻겨주었으니  / 너희도 서로 남의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 14절
02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4절.

이렇게 두개의 지침을 주시면서 그 사이에 배신을 예고하는 일화가 들어있습니다 . 그런데 배신하는 유다를 표현하시는 것이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다가 배신할 것이다.’ 가 아니라
2절에서는 ‘마귀는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를 배반할 생각을 넣었습니다’
27절에서는 ‘유다가 빵을 받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습니다.’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유다가 배신하는 사건을 유다가 아닌 마귀가 주체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누가복음에도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22:3)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사탄이 들어간 유다는 밤중에 밖으로 나가고 그는 사랑의 새 계명을 듣지 못했습니다.  왜 이렇게 사탄이 들어갔다고 표현할까, 더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인간이 갖는 마음 , 말과 행동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주신것과 그렇지 않은 것. 내 생명이 주심께서 나왔고 내 삶을 주관하시는 분이 주님이시라면 내 마음에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것은 어디서 나오겠습니까. 이런 맥락에서 떠오르는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디모데 후서 1:7)
다시 유다의 상황으로 돌아와 보면 유다에게는 하나님이 주신것이 아닌 사탄이 준 마음이 유다를 작동시키고 있었겠지요 그래서 사랑도 없었고 사랑의 계명을 받지도 못한것이겠지요 . 그런데 어떻게 하다가 사탄이 유다의 마음에 들어갔을 까요?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사탄의 들어간다’ 의 치료 혹은 방지책이 ‘서로 사랑한다’ 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번 묵사을 마무리짓게 됩니다.

역설적으로도 배신을 예고하시고 바로 이어 전하시는 계명은 사랑이었습니다 . 끝까지 베푸는 사랑을 보여주시는 주님. 13장의 핵심 메세지는 사랑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13장 1절의 말씀이 왜 이 장의 첫 구절에 박혀있는지가 와닿습니다. 1절에서 “예수께서는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1절과 마지막 절의 대조되는 구조가 보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절38절에서는 베드로에게 닮이 울기전에 네가 나를 3번 부인할 것이다 라고 예언하십니다. 부인한다는 것은 끝까지 사랑하는 것의 반대이며 이는 예수님은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나 우리 인간들은 우리의 안위를 위해, 상황에 따라서는 주님을 부인하는 끝까지 사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런 우리의 모습이 예수님을 몹시도 슬프게 하겠죠. 우리를 끝까지 사랑해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도 적당히하는 사랑, 적당한 믿음이 아니라 주님을 끝까지 사랑하는 모습으로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요한복음 12

요한복음12장

요약

1-11 베다니(나살로를 살리신 곳)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
3 마리아가 향유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드림
4-6 마리아에 대한 유다의 반응:나무람.
7-8유다의 반응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
“가난한 사람들을 항상 너희와 함께 있지만 나는 항사아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9-11 예수님을 더욱 더 경계하는 유대 사람들.
12-19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고 사람들이 호산나라고 외침. 초조해하는 바리새파 사람들.
20-22예수님을 만나로 온 그리스 사람들(헬라인).
23-27예수님의 가르침. 밀알의 비유, 자기 생명을 미원하는 사람은 영원히 그 생명을 보존할 것. 부활의 암시.
28-29 하늘에서 들린 메세지, 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30-33 이어지는 예수님의 가르침.
34 무리의 질문: 왜 인자가 올라가야 되는가?인자가 누구?
35-36 예수님의 대답:빛으로 다니라, 빛을 믿으라. 빛의 아들이 되리라.
37-41여전히 믿지 못하는 사람들과 그 이유를 예수님께서 이사야서로 대답하심.
42-43지도자들중 예수님을 믿고도 말하지 못하는 사람. 사람의 영광을 더 사랑하기 때문.
44-50 예수님의 가르침:빛으로 세상에 오심, 구원하러 오심, 오직 아버지꼐서 주신 말씀을 전하심.

나사로를 살리시니 베다니에성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벌어졌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신다.  여기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종려나무로 맞으며 호산나라고 외치는 유명한 장면이 나온다. 종려나무 가지는 당시 이스라엘 사람에게 거룩함과 승리의 상징이었다고 하고 호산나(Wsannav)는 ‘우리를 구원하소서, 지금 구원해 주소서’라는 뜻의 짧은 기도 구문이었다고 한다. 이는 사람들, 무리들이 대놓고 예수님을 믿고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부르기 시작하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다.

그리고 슬슬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암시들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 같다. 멀리 그리스에서도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이 생겼다.  이를 보고 예수님은 ‘인자가 영광 받아야 할 때가 왔다’고 하시며 뭔가 깊은 메세지가 담겼을 이야기들을 전해주신다. 밀알이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을 시작해서 빛으로 세상에 오시어 아버지께서 주신 명령이 영생이라는 것과 아버지께서 말씀해주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한다는 말까지.

묵상질문

12장 전반부에서 예수님을 향해 호산나라고 외치는 사람들과 대조적으로 그려진 바리새파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12장에서 그려진 바리새파 사람들은 장님 불도저같은 모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19절에서 바리새파 사람들이
“온 세상이 예수를 따르고 있으니 이제 할 수 있는 것이 없지 않소”
라고 이야기 합니다.  아이구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니요, 너무 간단한 일이 있으니 바로 눈뜨고 예수님을 믿는 것인데 말이죠. 딱 눈뜬 장님이 되버려서 기적을 보고도 기적인줄 모르는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어떤 새로운 상황에 맞는 해결안을 찾을 때는 그 상황을 보고, 그 상황에 맞게 해결안을 찾아가야겠지요. 그런데 지금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잡아 우리보다 앞서지 못하게 하자.’ 라는 결론을 갖고 모든 상황을 보지 못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이렇게 볼 것을 보지 못하니 생각도 이상해지어 멀쩡한 나사로까지 죽이려는 (10절) 마음도 먹었었습니다.

그리고 후에 42절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회당에서 쫒겨날까봐 믿는 다고 고백하지 못했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여기서 그들의 상황이 조금은 안되었다, 불쌍하는 생각을 들기도 했습니다. 43절에 나오듯이 이는 그들이 하나님보다 사람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요 거짓을 쫒는 것입니다. 당시 예수님을 믿었던 지도자들을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 않았을까요?

연민의 마음이 생기기는 것은 나의 모습과 오늘날 많은 교인들의 모습에서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경광과 사람의 영광의 애매한 상황에 처해 고민하다가, 혹은 그런 고민을 할 겨를도 없이 세상속에서 인간의 상을 쫒아가다가 하나님의 영광을 잃어버리고 살게 되는 일들을 반성합니다. 43절의 말씀은 우리가 ‘상황이 그래서’, ‘상사가 눈치를 주어서’, ‘사회 분위기가 다 그래서’ 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상황이 그래서’, ‘상사가 눈치를 주어서’,  ‘사회 분위기가 다 그래서’
=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람의 영광을 더 사랑하고 있는 것.

38-41절에서 예수님은 이사야의 말을 인용하여 사람들이 믿지 않는 이유에 대한 답을 하십니다. 시아야서의 말을 인용한 것은 무슨 뜻일까요?

사람들이 표적을 보고도 이리도 믿지 못하는 이유는 주께서 그들을 믿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사야서6:10에 인용하여 ‘ 주께서 그들의 눈을 멀게 하셨고, 마음을 무디게,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게…’ 했다고 하십니다. 질문이 생깁니다. 징벌을 내리셔서 못 믿게 되었는데 이제는 예수님이 그 때문에 죽으시게 된것인가?  그렇다면 왜 이렇게 말씀하신것일까?

그렇게 징벌을 받은 사람들의 눈을 열어주실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일까? 12장 마지막에 ‘나는 무엇이든지’아버지께서 말씀해 주신대로 말한다고 하셨는데 여기서 무엇이든지에는 예수님의 죽음이 포함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주님께서 징벌로 사람들이 믿지 못하게 눈을 멀게 하셨는데 예수님이 죽으심으로써 그들의 눈을 뜨게 할 계힉을 암시하는 것일까… 더 생각해보고 알아나가기 원하는 질문을 들고 본 묵상을 마칩니다.

요한복음 11

요약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기적

1-3  마리아와 마르다의 형제인 나사로가 병듬.
4-7  나사로의 병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 유대 지방으로 가자고 하심.
17-26 도착. 예수님과 마르다의 대화.
27  마르다의 믿음과 고백 “ 네, 주여! 주는 세상에 오실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으르 제가 믿습니다.”
28-32 마리아의 등장 및 호소.
33-35 예수님의 비통한 마음과 눈물.
36-44 많은 사람들이 있는 가운데 무덤에서 나사로를 불러서 살리심.
45-57 기적을 본 사람들의 두 반응. 많은 사람의 믿음 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이려는 움직임.

유대지방에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기적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사로의 두 자매인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에게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오빠가 죽지 않았을것입니다.” 라고 호소하며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무덤에서 살려내시고 이 기적을 통해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된다. 물론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 경계심을 느낌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님을 잡아 죽일 음모를 추진한다.
이번 기적을 행하시는 가운데 예수님의 인간적으로 감정적인 모습이 많이 보여지는 것 같다. 33절에서는 마음이 비통하고 괴로워하셨다고 하고 35절에서는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셨다고 알려주고 있다. 이때 예수님이 슬퍼하시고 눈물을 보이신 정확한 이유는 명확히 나와있지 않다. 죽었던 나사로는 예수님께서 살려주신다는 점에서 나사로때문만은 아닌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 맥락에서 에수님의 비통함을 인간의 죽음에 대한, 혹은 주님이 사랑하시는 인간들을 떠날 예수님 본인의 죽음에 대한 슬픔도 함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묵상질문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기적을 통해서 전하시는 메세지는 무엇일까요?

우선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기적은 어느 기적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나사로의 병든 소식을 들었을 때 예수님의 반응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요,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을 받게 될 것이다.(11:4)” 이었습니다. 이는 앞서 9장에서 날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을 고치시는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 왜 이 사람이 맹인이 되었는지를 물어보는 제자들에게“ 다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그에게서 드러내시려는 것이다. (9:3)” 라고 대답하신것과 같은 메세지인 것 같습니다.
앞선 기적들과의 다른 점을 생각해보면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것을 통해서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 혹은 ‘하나님의 영광’의 핵심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앞서 10장에서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말해주시면서 ‘나는 그들에게 영생을 준다.’고 말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본 11장에서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기적을 보여주시면서 예수님이 생명임을 증명해 보여주시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영생을 주신다고 한것은 우리 육체의 영속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능력을 보여주심으로써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면모의 증거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명이신 하나님을 믿고 참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말이죠.
반면 놀라운 점은 죽은 사람을 살리시기까지한 예수님을 바로 앞에 두고도 예수님을 보지 못하는 바리새파 사람들입니다. 생명을 주관하시는 것을 놓고 “우리의 땅과 민족을 빼앗아 버릴 것입니다.(11: 48)” 라고 요란을 떠는 바리새파 사람들이 정말 맹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생명을 보여주시는데 그것을 전혀 보지 못하니 확실히 눈이 멀어버린거구나. 당시 바리새파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당면한 안위와 경제적 풍요에 눈에 멀어있던게 아닐까 합니다. 현대 일상을 하는 내 모습속에서도 눈앞에 닥친 일과 과제과 경제적 난관에 눈이 멀어있던 적들을 반성합니다.

간단합니다. 하나님=생명=예수님.
생명이 없다면 뭘하든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일단 생명이 있어야겠지요, 이렇게 생각하면 우선순위가 명확해지는게 아닐까요? 우선 해야하는게 생명을 챙기는 것이고 그것이 곧 예수님을 따라 하나님을 따라가야하는 것이겠죠. 생명이 하나님께만 있고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갈 수 있다는 메세지를 되새깁니다. 생명이 있는 Simple life를 위해 기도합니다.

요한복음 10

요약선한 목자이신 예수님.

양 우리, 문의 비유(1-9)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 – 양들의 목자.
다른 길로 넘어가는 사람 – 도둑,강도.
선한 목자와 도둑/삯꾼의 비교(10-16)
아버지와 예수님과 생명의 관계(17-18)
사람들의 갈라진 반응 (19-21)
예수님과 유대사람들의 질의응답, 예수님이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설명 (22-30)
유대 사람들의 반응- 하나님을 모독했다고 여김.(31-38)
피하셔 요단강 건너편에서 머무르심.(39-42)

본 10장에서는 양의 우리와 양과 선한 목자의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이 누구인지, 우리에게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주고 계십니다. 예루살렘 수전절에 사람들이 예수님께와 당신이 누군지 정확히 말해보라는 질문합니다. 이때 좀 더 서술적으로 예수님 본인에 대해 설명하시고 마지막으로“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다.” 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자신이 하나님의 하나된다는 진리를 밝히지만 유대 사람들을 예수님이 감히 하나님을 모독했다고 생각하여 반감을 일으키고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나 예수님이 피하셨습니다.

묵상질문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과 어떻게 다르십니까?

예수님은 나의 선한 목자 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요 내 아버지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내가 하늘나라로 가는 유일무이한 문이되십니다.

“ 나는 양들을 위해 내 생명을 내 놓는다 (10:15) ” 고 고백하십니다.
“ 나는 그들에게 영생을 준다 그들은 영원히 명망하지 않을 것이며 어느 누구도 내 손에서 그들을 빼앗을 수 없다. 그들을 내게 주신 내 아버지는 모든 것보다 크신 분이다. 어느 누구도 그들을 내 아버지 손에서 빼았을 수 없다.(10:28-29)”

이렇게 예수님의 고백이 나에게 큰 감동이 되고, 나같은 약한 아이를 지키는 ‘어버이’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 이십니다. 예수님은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모든 기적들을 행하고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반면 바리새파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모든 행동과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는  이유도 살펴보면 자신의 사회적 위치와 경제적 안위를 보호하기 위해서인 것 같습니다. 자신의 욕심을 챙기는 종교지도자들인 것이지요. 자기의 유익을 위하는 사람이 절도나 강도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이때 종교지도자들은 도둑에 해당할 것입니다.